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문단 편집) ==== 미적분학 ==== 가장 유명한 업적은 [[아이작 뉴턴]]과 동시대에 [[미적분]] 이론을 발명한 것.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개발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가장 유명한 설은 포도주를 숙성하는 오크통의 부피를 측정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오크통 부피 측정을 위해 만든 것 치고는 완성도가 높았던 탓인지 라이프니츠가 독자적으로 미적분을 발명했다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었다. 결국 누가 미적분을 먼저 발명했는가에 대해 싸움이 벌어졌다. 시기적으로 뉴턴이 1666년쯤 미적분을 발명했고, 라이프니츠의 발명 시점은 1675년이다. 1675년 라이프니츠는 미분의 기호 [math(d)]와 적분의 기호 [math(\int)]를 고안하여 미적분학 문제들을 풀어내었고 이들을 자신의 노트에 기록해 두었다. 라이프니츠는 1676년 10월 런던을 방문하여 수학자 존 콜린스(John Collins)와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며 여러 수학적 논의를 나눈다. 그때 라이프니츠는 콜린스로부터 뉴턴이 1669년 작성한 논문, De analysi per aequationes numero terminorum infinitas를 받아보게 된다. 이 논문은 [[유율법]]을 담고 있으며 출판되지 않은 채로 영국의 수학자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던 논문이었다. 다만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논문을 봤던 시점에는 이미 라이프니츠가 자체적으로 미적분학을 완성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뉴턴의 논문이 큰 참고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된다. 시간이 흐르고 뉴턴이 발표를 미루고 있을 때 적극적인 성격의 라이프니츠는 미적분을 정리하여 1684년 독일 학회에 발표한다. 그 후 뉴턴은 1687년에 [[프린키피아]]를 출간하며 미적분을 발표하게 된다. 당시 세계 과학을 주름잡는다고 생각했던 영국 학회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며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이론을 베꼈다고 독일 학회에 항의하였다.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출판전 논문과 편지를 읽어보았다는 사실을 문제삼은 것이다. 영국 학회의 맹렬한 항의 배경에 대해서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뉴턴이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영국 [[왕립학회]]의 과학자들에게 라이프니츠의 표절 여부를 조사(?)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설과, 뉴턴 밑의 제자들이 영국 학회가 독일 학회에 이의를 제기하라고 자진하여 촉구했다는 설이다. 다만 평소 뉴턴의 권위적이고 괴팍한 성격 때문인지 통설로 받아들여지는 쪽은 전자이다. 결국 나중에 국제 분쟁에서는 영국과 독일의 과학자들 사이의 힘겨루기처럼 커졌는데, 이것이 단순히 누가 이론을 발명했는지 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닌 어느 국가가 과학의 선두 주자인가에 초점을 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립학회를 중심으로 뭉쳐 있던 영국 학계와 달리 당시 신성 로마 제국에 소속된 여러 군소 영방국가들로 나눠져 있던 독일 측의 파워는 미진한 편이었다. 오늘날 학자들은 미적분학은 뉴턴이 먼저 생각해냈지만 둘 다 독자적으로 발견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수학적 완성도는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뉴턴은 수학자이기 이전에 물리학자라서 고전 역학을 정리하는데 편리하도록 미적분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반면 라이프니츠는 평균변화율의 극한으로 순간변화율, 즉 미분계수를 정의하는 등 뉴턴보다 엄밀한 방식으로 미적분을 고안하고 정리했다. 현재 전 세계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미적분의 기호나 이론은 모두 수학적으로 더 엄밀한 라이프니츠의 체계다. 그리고 교육적 편의성에서도 뉴턴은 라이프니츠에게 뒤쳐졌다. 당시 뉴턴이 만든 미적분의 기호는 오직 뉴턴만 알 수 있는 복잡한 식이었다. 반면 라이프니츠의 논문은 '하나의 변수를 다른 변수에 대해 미분한 값'을 어떤 기호로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변수에 대한 함수란 건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적분기호를 실제 쓸 때 편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사람들이 논리적 흐름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기술되었다. dy/dx라는 적합한 기호의 틀들을 만들어 내는 데 관심을 두면서 연구를 진행하여 다른 학자들에게 쉽게 이해를 시키기도 하고 인정을 받았으나, 뉴턴은 그냥 미분을 ẏ처럼 위에 점 하나 달랑 찍어서 표현하는 등 미적분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기호와 틀의 보편성, 천재 아닌 사람도 쉽게 이해할 만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다. 또한 뉴턴의 성격 자체가 너무 내성적이라 일일이 학자들이 미적분에 대해 궁금해하는 편지를 보내도 아무런 답장이나 대꾸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뉴턴식 미분 표기는 별로 쓰이지 않고, '''뉴턴 본인이 만든''' [[고전역학]]에서 시간에 대한 미분을 표현할 때나 쓰인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것이 뉴턴의 미적분이 완성도가 낮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라그랑주 역학, 해밀턴 역학에서는 운동량, 속도도의 시간 미분을 d/dt 형태로 풀어서 쓰면 식이 너무 지저분해져서 이쪽은 점응 찍는 표현이 관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